중요한 행사마다 우리가 묵념을 바치는 대상인 순국선열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먼저 죽은 열사’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 순국하여 건국훈장(建國勳章), 건국포장(建國褒章), 대통령표창(大統領表彰)을 수여받은 독립유공자들이다.
일제시절 강제징용과 성노예 징집, ‘조선인을 조선인의 손으로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도특설대 같은 악랄한 군부대가 존재하던 사회 속에서 내일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독립운동 활동을 한 그들의 영웅적 업적에 대한 찬양은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부족할 것이다.
최근 친일파 민영은의 친손들이 민영은의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청주시에 제기해 전 국민적 공분을 산 일이 있었다.
다행히 항소심에서 원심의 판결을 뒤집고 민영은 일족 패소 판결을 내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사건은 여러모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족을 배신하고 침략자와 그들의 군대에 빌붙은 자들의 후손이 이젠 그 매국 선조들의 부끄러움을 잊어버릴 정도로 우리 사회의 순국선열에 대한 존경심이 해이해져 있는 것이다.
맹자는 사단설에서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 했다.
틀림없이 조국을 일제로부터 지키거나 그들의 압제에서 독립시키기 위해 자신을 불태워가며 활동하는 동시대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팔아먹고, 심지어 침략자의 군대에 자진입대하여 독립군에 맞서 싸운 자들은 수오지심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매국의 댓가로 받은 이익을 상속의 대상 혹은 되찾아야 할 권리로 인식하는 그들의 후손 또한 수오지심이 없는 자들에 속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독립했음에도 매국세력의 처단을 확실히 하지 못한 나라이다. 그리고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들은 어렵게 생활하는 반면 매국세력의 후손들은 조상의 매국행위 댓가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회 상류층으로 뿌리내린 경우도 있는 나라이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니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영원히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지적받을 사항이다.
이젠 순국선열의 의미와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한번 돌아볼 시기가 왔다. 민영은의 후손이 벌인 이 해괴한 해프닝이 다시는 벌이지지 않으려면. 민족의 배신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수오지심을 가져야 한다.우린 우리의 후손들에게 순국선열을 설명하고 그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갖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민족의 호흡이 꺼져가던 시기에도 마지막 불꽃을 목숨바쳐 지켰던 그들이 있었음을...
경주보훈지청 복지과 김익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