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에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신적 착란증상을 말한다. 이 말의 연원은 이렇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크로체성당에 있는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를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글로 적었고, 이를 심리학자들이 스탕달 증후군이라고 부른 것이다.스탕달 증후군을 느끼는 사람들은 훌륭한 조각상을 보면 모방 충동을 일으키고 명화 앞에서 웃고 울고 분노하는 등 희노애락을 동시에 느낀다고 한다. 주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며 심각하면 격렬한 흥분 때문에 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증상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고 안정제를 복용하거나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오면 금방 회복된다.지난 2011년에는 MBC의 ‘신기한 TV 서프라이즈’를 통해 스탕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날 방송에는 과거 영국 박물관에 자주 출몰하는 ‘미라에 홀린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다. 박물관 측은 CCTV와 첨단 장비를 설치해 24시간 감시하고 미라에 홀린 사람에게 대응하는 지침서를 발간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나도 스탕달 증후군을 느낀 적이 있다. 30대 후반 러시아의 고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여행했다가 에르미따쥐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맞먹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 미술관은 피터대제가 러시아제국의 전리품들을 고스란히 소장했다가 전시하는 러시아 최고의 미술관이다.나는 여기서 말로만 듣던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원작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명화일 뿐 아니라 빛의 마술사로 불리던 세계적 거장의 그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느꼈던 황홀경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 종일 이 미술관을 거닐었던 그날 나는 램브란트의 그림 앞에서 족히 두시간은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스탕달 증후군이 주는 정신적 의미는 전문가가 아닌 내가 마땅히 정의내릴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정신적 작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들어도, 아무리 훌륭한 스토리의 소설을 읽어도 그저 무덤덤하게 넘어가기 십상인 현대인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일정부분 스탕달 증후군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경주의 산하를 보면서 나는 이 같은 증상을 또 느꼈다. 지난 봄 귀향한 나는 사계절 중 봄, 여름, 가을을 겪고 있다. 벚꽃이 찬란하게 피던 봄에 고향으로 돌아와 진한 꽃향기에 취하고 봄볕의 나른한 기운에 몽환적으로 빠져들었던 나는 지난여름 혹독한 더위를 겪으면서도 경주의 산하가 가진 싱싱한 자연의 멋을 선물로 받았다. 아무리 지칠 듯이 더워도 녹음이 짙게 드리워진 경주는 고도의 멋을 늠름하게 지켜냈다.그러다가 다시 가을이 왔다. 단풍이 들다가 우수수 나뭇잎이 떨어져 이제는 나목의 앙상함만 남았다. 이쯤 되면 어느 도시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여 퀭한 바람에 우울함을 더할 터지만 경주의 가을은 고색창연하다. 고도의 속살이 오히려 더 생경하게 드러난다. 곧 겨울이 온다. 눈에 덮이는 도시를 상상해 본다. 첨성대에서 월성으로 오르는 곧은 길목에 눈이 쌓이고 그 눈을 밟으며 천년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면 세상 어느 여행지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 명약관화하다.경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스탕달 증후군을 느낀다면 우리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다. 사실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도시이면서도 이 가치를 포장하고 전달하는 기법이 세련되지 못했다. 경주역에서 내려 성동시장의 토속적 분위기에 취하고 대릉원 산책길을 걸어 월성과 월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무릎에 힘이 없어지고 현기증을 느낄만한 감동을 불어넣어 주는 일을 벌여야 한다.각계의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사사건건 트집을 놓는다면 경주의 미래가 밝지는 않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경주를 방문해 스탕달 증후군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일목요연하고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시민 모두가 의견을 모으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이상문(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