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부정선거 행태는 막걸리와 고무신으로 대변된다. 반장, 혹은 당원이 앞장서서 막걸리를 돌리고 고무신을 나눠줬다. 공공연한 부정에 대해 심하게 반대하는 일도 드물었다. 오히려 아무런 기부행위를 하지 않는 후보자에 대해 유권자들은 인색하다는 이유로 공격했다. 그리고 막걸리와 고무신은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그 둘이 사라지고 나서 돈봉투가 횡행했다. 야음을 틈타 구석구석에서 돈이 오고갔고 돈봉투는 투표 전날 밤 집중적으로 살포됐다. 적게는 몇 만원에서 크게는 수십만원까지 건넸다. 액수는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정해졌다. 그리고 관광버스를 대절해 여행을 보내는 일도 많이 있었다. 주로 연로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건네준 사람에게 표를 던지는 속성이 있었다. ‘소금 먹은 놈이 물을 켠다’는 옛말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이도저도 안 된다는 지금에 와서는 교묘한 수법으로 부정선거가 치러진다.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온갖 음해와 교란, 각종 모임을 통한 은밀한 거래, 모바일을 이용한 문자 부정 등 진화되고 다양해졌다.하지만 이러한 부정행위는 금방 들통난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각종 감시의 눈을 피해가기 힘들다. 그러므로 최근의 선거운동 방법은 매우 투명해졌고 공명정대해졌다. 만일 당선된 후라 하더라도 부정선거 혐의가 드러나면 당선이 취소되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 닉슨이 상대 당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하야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지난 6일은 내년 6월 4일 실시되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80일전에 적용됐다. 아닐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출마예정자들에 대한 공직선거법 제한규정이 엄격히 시행됐다. 선관위는 내년 6·4지방선거와 관련해 선거일전 180일인 6일부터 후보자간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불법적인 선거운동으로 인한 선거의 공정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행위를 제한 또는 금지한다고 밝혔다.우선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자치단체의 사업계획이나 추진실적, 활동상황을 알리기 위한 홍보물을 발행하거나 배부할 수 없다. 또 주민자치센터가 개최하는 교양강좌에 참석할 수 없으며, 근무시간 중에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행사외의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현수막, 선전탑 등의 광고물을 설치·게시하거나, 표찰 등 표시물을 착용 또는 배부할 수 없다. 또한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 또는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거나, 정당·후보자의 명칭·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사진, 녹음·녹화물, 인쇄물, 벽보 등을 배포할 수 없다.이것뿐이겠는가. 매우 세부적인 항목으로 후보자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후보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모든 행동을 취하기 전에 일일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구해야 한다.최근 어느 지방자치단체장이 내년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관위에 문의를 했다. 해맞이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어묵을 끓여 대접하려 하는데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선관위 직원은 매우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어물 국물은 되는데 어묵은 안 된다는 것이다.단체장이 주관하는 행사에 시민이 참여했을 때 음식물 제공행위가 일체 불가능하지만 커피, 녹차 정도의 제공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어묵 국물은 커피, 녹차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어묵은 음식물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애매하고 우스운 사례인가.선거법이 정말 까다롭다. 이를 다 숙지하고 선거를 치르는 후보가 얼마나 될까 싶다. 상대 후보의 부정을 적발하기 위해 혈안이 된 선거운동원들은 아예 선거법을 파고 살며, 수시로 선관위에 해석을 요구한다.결국 아무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고 정면승부하라는 이야기다. 궁극적인 법의 취지가 선명하지만 과연 그 취지를 따르는 후보들만 등장하는 날이 언제 올까 까마득하다. 이상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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