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다는 것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벅찬 희망을 상징한다. 세상의 무슨 음식을 먹어도 느끈히 소화를 시키고 어떠한 상황에 부딪혀도 자신 있게 이겨나갈 힘이 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중에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노인은 젊은이의 미래 자화상인데도 말이다.불과 20~30년 전에는 버스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큰 미덕으로 알고 아예 버스에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서 있었다.다음 정류장에서 어떤 노인이 탈지 모르니 자리를 비워두고 서 있는 것을 당연시 여겨 노인들이 서고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것은 지극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60~70대 노인들이 버스에 타면 머리가 반백이 된 50대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도 10~20대 청소년들은 그 자리가 노약자 또는 장애인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즐기거나 아예 눈을 감고 자는 체하기가 일쑤다.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은 참으로 보기 힘든 세태다. 이러한 세태이고 보니 요즘은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해 보이고 가정교육이 잘된 자제들로 보인다. 불과 20~30년 전에는 통념으로 여겨오던 일들이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기성세대들의 가정교육 부족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보인다.옛날에는 자녀를 다산하여 힘에 부치게 키우다 보니 개개인에게 사랑과 정을 골고루 주지 못했던데 비해 요즘은 한 두명의 자녀에게 부모의 모든 사랑을 베풀고 있다. 철없고 버릇없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은 과잉 자녀사랑이 빚은 결과인 것 같다.예 이야기에 어떤 노부모가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어려운 살림에도 고기반찬을 하면 아들에게는 살코기만 먹이고 노부모는 뼈만 먹으면서 키웠더니 아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고기반찬을 해서 노부모에게는 뼈만 드리고 살코기는 자기가 먹어치우는 불효막심한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아들이 자기 부모가 뼈만 좋아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 뒤 주위 사람들의 바른 가르침으로 크게 깨우친 아들은 살코기만 골라 부모를 봉양하는 바른 효도의 길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이 이야기는 바로 과잉된 자식 사랑과 부실한 가정교육의 본보기인 것 같다. 젊으면서도 노인행세를 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무리 보아도 사랑스러운 자식들이지만 때론 꾸짖을 필요가 있다. 가정교육에 따라서 자녀와 나라의 미래가 좌우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와 양보하지 않는 젊은 사람들을 보는 우리 어른들은 내 자식들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어떻게 하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 젊은 사람들은 젊음의 우월성을 포기하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노인을 힘들게 서서 흔들리고 있는 노인이 몇십년 후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 노인들이 참 젊은이로 돌아왔으면 한다.젊은이들은 한 국가의 근간이다. 이들이 곧게 자라나야 국가의 미래가 밝다. 아무리 좋은 학교교육을 받고 넓은 세계관을 가졌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인성이 바로잡히지 않았다면 그 국가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 투철한 국가관과 드넓은 비전은 밥상머리 교육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정길(전 언론인)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