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손' 손흥민(21·레버쿠젠)에게 꿈의 무대가 펼쳐진다.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은 2013~2014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 리그를 A조2위로 통과해 본선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레버쿠젠은 11일 새벽 스페인 기푸스코아주 산세바스티안의 에스타디오 아노에타에서 원정경기로 치러진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A조 최종전(6차전)에서 1-0으로 승리, 같은 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가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를 1-0으로 꺾어주면서 16강의 꿈을 이루게 됐다.손흥민은 이천수(32·인천 유나이티드)·박지성(32·아인트호벤)·이영표(36·은퇴)·박주영(29·아스날)·박주호(26·마인츠) 등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6번째로 본선 무대를 밟는다. 만 22세에 레알 소시에다드 소속으로 2003~2004시즌 챔피언스리그 그라운드에 선 이천수보다 한 살 어린, '국내 최연소 진출자'다.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A조 최약체 레알 소시에다드를 상대로도 득점포가 침묵한 탓이다. 최근 리그에서 4경기 6골, 그것도 1일 뉘른베르크전 2골·8일 도르트문트전 1골 등 2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던 손흥민이기에 챔피언스리그 데뷔골에 대한 기대로 새벽잠까지 설쳐가며 응원한 국내 팬들의 실망감은 더욱 크다. 손흥민은 지난 챔피언스리그 5경기에 이어 이날도 선발 출장해 90분간 상대팀을 줄기차게 위협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축구사에는 공격 포인트만 기록되는 법이다. 현재까지 손흥민은 골 없이 2도움에 그치고 있다.이제 손흥민에게 남은 목표는 2004~20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의 박지성을 9시즌 만에 재현하는 것이다. 당시 에인트호벤은 4강 홈 2차전에서 AC밀란(이탈리아)과 다시 만났다. AC밀란은 챔피언스리그에서만 2002~2003시즌까지 이미 6차례 우승한 초강팀이었다. 게다가 앞선 원정 1차전에서 0-2로 패해 불리한 상황이었다. 큰 경기, 그것도 위기에 강한 박지성의 진가는 그날 진면목을 드러냈다. 박지성은 홈 2차전에서 다시 만난 AC밀란을 상대로 전반 선제골을 터뜨렸다.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데뷔골이었다. 박지성의 골에 용기백배한 에인트호벤은 쉴 새 없이 AC밀란을 몰아쳐 3-1 대승을 거뒀다. 양 팀은 승패, 골득실이 모두 같았으나 에인트호벤은 안타깝게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발목을 잡혀 결승 진출권을 AC밀란에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이날 골은 박지성의 이름을 유럽 무대에 떨칠 수 있게 해줬고, 다음 시즌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최고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점프하는 발판이 됐다. 우려되는 것은 레버쿠젠이 현재 조 2위라는 사실이다. 16강 상대는 모두 다른 조 1위 팀이다. 아직 대진 추첨이 되지 않아 상대가 누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조 1위 팀들의 면면을 보면 두려움의 극치다.B조 레알마드리드(스페인)·C조 파리 생제르맹(프랑스)·D조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조별 리그 역대 최다골 기록(9골)을 새로 쓴 '득점머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8)를 앞세워 예선 전승으로 16강행을 이뤘으며,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의 지존' 프랭크 리베리(30)를 선봉장으로 삼아 2012~2013시즌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해 분데스리가·DFB 포칼컵을 모두 우승하는 '트레블'을 이룬 팀이다. 올시즌에도 리그에서 압도적 1위를 질주하는 것을 시작으로 2시즌 연속 트레블을 노리고 있다. 조별 예선에서 만난 맨유에 9월18일 2-4, 11월28일 0-5로 모두 대패했을 정도로 강팀에 한없이 약한 레버쿠젠으로서는 그래도 다른 두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파리 생제르맹을 만나야 8강의 꿈을 키워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적인 것일 뿐 파리 생제르맹 역시 프랑스 리그앙에서 1위를 달리는 팀인데다 즐라탄 이브라모히비치(31)·에딘손 카바니(26)의 무시무시한 쌍포를 가진 강팀이다. 게다가 이브라모히비치는 2014브라질월드컵 유럽 플레이오프에서 호날두가 이끈 포르투갈에 패해 브라질월드컵 본선의 꿈이 좌절된 만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칼을 벼르고 있다.가뜩이나 약팀들을 상대로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한 손흥민으로서는 홈앤드어웨이로 치러지는 강팀과의 16강전에서 얼마만큼 많은 득점 기회를 갖게 될 지 미지수다. 오히려 손흥민은 이번 무대에서 좀 더 배우고 많은 경험을 쌓겠다는 자세로 '발에서 최대한 힘을 빼고' 임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대단한 팀들과의 대결을 통해 기술적으로나, 경기 운영적으로나, 피지컬적으로나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는 것이 축구계의 중론이다. 챔피언스리그에서 멋지게 한 방을 터뜨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오히려 조별 예선에서 약팀들로부터 한 골도 못 빼앗게 만들었던 것처럼 본선 무대에서 박지성처럼 큰 공을 세우겠다는 것에 방점을 찍다 보면 오히려 좋지 못한 인상만 남기게 된다. AC밀란전이 열린 2005년 5월, 박지성은 만 24살이었고, 손흥민은 내년에 만 22살이 된다. 또 박지성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에인트호벤에 입성한 뒤였고, 손흥민은 이미 빅리그에 진출한 상태에서 챔피언스리그 본선은 물론 또 하나의 꿈의 무대인 브라질월드컵에도 나선다. 전혀 급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