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택(63) 포스코 회장이 자진 사퇴키로 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포스코에 따르면 이 회장은 15일 이사회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용퇴키로 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에는 정준양(61) 포스코건설 사장과 윤석만(61) 포스코 사장 등이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퇴 결심에는 '정치권의 외압'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임된 포스코의 최고경영자(CEO)가 집권 세력의 외압으로 임기 전에 교체되는 것은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한다"며 강력 비판했다. 이구택 회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3월 취임했으며, 2007년 주주총회에서 2010년 2월까지 3년 임기로 연임에 성공했다. ◇ 사상 최대 실적 자랑....외압설 파다, 자의아닌 타의(他意) 퇴진 이구택 회장은 취임 이후 포스코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어내고 파이넥스 신기술 제철소를 완성 가동하는 등 경영을 잘해왔다는 평을 받아 왔다. 더욱이 특별한 '과오'가 없었다는 점에서 외압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의보다는 타의에 무게가 실린다는 뜻이다. 과거 정권 교체기마다 포스코 회장이 교체됐다는 점도 이같은 시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 박태준 회장이 임기 중 물러났고, 김대중 정부 때 김만제 회장, 노무현 정부 때는 유상부 회장이 퇴임했다. 이구택 회장은 2003년 3월 전임 유상부 회장의 갑작스런 사퇴로 회장직에 오른 뒤 연임에 성공했으며, 1년 2개월의 임기를 남겨놓고 있다. 포스코 회장 교체설은 지난 연말 정치권에서 시작돼 철강업계와 증권업계까지 파다하게 퍼진 상태다. 포스코가 민간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적인 성격이 강해, "새 정권 출범에 맞춰 알아서 물러나야 하는 게 옳지 않느냐"는 논리다. 포스코는 이미 2000년 민영화 됐고 외국인 주주 지분이 40%를 넘지만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고 정부 주도의 산업화 정책과 함께 만들어져 성장해 온 탓에 여전히 공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포스코 회장 자리 또한 '정치권의 전리품'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특히 철강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뇌물 수수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포스코와 관련된 일부 비리혐의가 포착되자 이 회장이 외부의 퇴진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포스코는 2005년 7월 세무조사를 받은 뒤 1704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5년 만에 하는 정기조사였다. 그러나 포스코는 당시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하고도 고발조치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검찰은 포스코가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상대로 대구국세청의 세무 조사 무마를 청탁한 단서를 입수했으며, 대구국세청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 KTF 조용주 사장과 KT 남중수 사장 이후 다음 타겟은 포스코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회장이 정치권의 외압에 못이겨 퇴진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지는 이미 한참 됐다"며 "포스코를 글로벌 기업으로 이끄는 등 좋은 성과를 올려왔고 파이넥스 제철소를 완공하는 등 공적을 쌓아온 이 회장을 흔드는 정치권에 대한 포스코 안팎의 불만이 높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경기침체 등 난관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 승진이.... 재계와 시장에서는 포스코 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외압을 놓고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개혁연대는 "포스코의 회장 조기교체는 공기업의 엽관주의로도 모자라 민영화된 기업의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전리품처럼 여기는 정치권의 구태"라며 "경영외적인 문제로 포스코의 지배구조를 흔드는 것을 보면서 경제위기를 타개해 나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구호에 깊은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도 "지난 정권에서 포스코가 시민단체를 지원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구택 회장이 현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등의 소문이 계속 나왔다"며 "민영화된 지 10년 가까운 기업의 CEO를 정부가 공기업처럼 다루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말했다. 한편 후계구도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스코는 15일 정기 이사회에서 이 회장이 공식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히면 조만간 이사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새 회장 선임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다음달 6일 이사회와 27일 주주총회를 거쳐 회장을 공식선임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현재로선 내부승진 가능성이 유력하다. 포스코 회장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외부 인물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이 회장의 낙마에 이어 '낙하산'이 내려올 경우 외풍 논란이 거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을 사퇴시킬 만한 외풍이 작용한 만큼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전·현직 장차관급의 중량급 인사가 후임 회장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KT가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신임 사장으로 맞은 것처럼 포스코에도 정· 관계의 중량급 인사가 올 수있다는 뜻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업도 나름대로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데다 경기침체의 험한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내부 승진이 유리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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