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 떠나는 동경주 구석구석! 오늘은 세 번째로 문무왕 수중릉을 찾아갑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한 왕으로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부왕을 도와 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왕위에 올라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해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또 통일을 도왔던 당나라와도 전쟁을 벌여 고구려 영토의 남부까지 회복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면서 신라의 국격을 높였습니다. 그야말로 ‘신라를 신라답게’ 만든 인물인 셈이죠.문무왕은 재위 21년인 681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삼국사기에 문무왕이 남긴 유언이 전해지는데요. 유언에 따르면 그는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장례를 검소하게 하며, 불필요한 조세를 모두 폐지하고, 법령과 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바꾸라”고 했습니다. 당시 절대 권력을 지닌 왕권사회에서 이처럼 민주적인 정책을 만들도록 유언을 남긴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군주였는지를 알 수 있죠?월성원자력본부 홍보관에서 감포 방향으로 약 6km 정도를 달리면 문무대왕면 봉길리 바다가 펼쳐집니다. 이 해변에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바다에 섬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커다란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가 바로 문무왕 수중릉인데요. 세계에서 유일한 수중릉입니다.그의 유언에 따라 남은 이들은 엄숙하게 장례를 치릅니다. 삼국사기에 “왕이 죽자 시호를 문무라 하고 군신이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석 위에 장사했으며, 속전에는 왕이 변해 용이 됐다 하니 이에 돌을 가리켜 대왕암이라 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수중릉은 장골처인 대석을 중심으로 네 곳에 수로의 문을 설치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불타의 사리를 안치한 사리탑의 형식을 본뜬 것이라고 하는데요.문무왕은 왜 죽어서도 동해바다에 묻혔을까요? 아마도 그가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 돼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호국정신 때문 아닐까요?문무왕의 수중릉에서 멀지 않은 경주시 배반동 낭산 아래에는 신성시되는 언덕이 있고 여기에 능지탑이라고 불리는 탑이 있습니다. 문무왕의 시신이 화장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문무왕은 한줌의 흙으로 산화돼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동해구 바다에 묻혔지만 그 정신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습니다.경주시가 그동안 내륙문화에 비해 해양문화에 공을 적게 들인 탓에 이곳의 관광인프라는 아직 부족합니다. 다행히 지난 3월 경주시가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을 옛 대본초등학교 부지에 짓기로 하고 착공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이 역사관이 완공되면 문무왕 수중릉은 물론 이 일대 유적들이 체계적으로 홍보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콘텐츠는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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