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처럼 봄이 살포시 깨어났다. 봄이 벌‧나비를 유혹한다. 봄은 사랑의 계절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칩이 ‘연인의 날’이었다고 한다. 가을에 은행을 주워 보관하고 있다가,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기 위해 경칩에 교환했다고 한다. 이어서 사랑과 관련된 발렌타인데이(2월), 화이트데이(3월), 블랙데이(4월)가 봄바람 타고 왔다. 봄이면 뻐꾸기와 검은 등 뻐꾸기, 꾀꼬리가 짝을 찾기 위해 산에서 노래한다. 은은하게 쏟아지는 봄날 보름달 밤 쏙독새가 애달프게 운다. 달빛은 마치 은근한 어머니 사랑처럼 쏟아져 내린다. ‘은은한 달빛이 안개처럼 흘러내린다 달빛은 사랑이다. 쏟아지는 달빛 마시며 눈 맑은 사슴처럼 산이 누워 있다. 쏙독새도 하얀 달빛 마시며 사랑에 취해 쏙독 쏙독 달빛을 토해낸다. 토해낸 달빛을 산이 또 마신다. 달빛 같은 사랑을 마시고 싶다. 달빛에 취해 사랑에 취해 산처럼 잠들고 싶다’(달빛은 사랑이다 권오중) 봄밤 배꽃에 달빛이 조요하게 비치는 정경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조년의 다정한 마음이 곰살갑다. ‘배꽃에 달이 밝게 비치고 밤은 깊어 삼경인 때에 나뭇가지에 어려있는 봄의 마음을 소쩍새가 알랴마는 다정한 것이 병처럼 되어서 잠 못 들어 하노라’. 또한 꽃 사이를 오가는 나비와 나무에서 폴폴 나는 꾀꼬리 모습은 그림 같다. ‘꽃 사이에 나비가 춤추는 것이 어지러이 날리는 눈과 같고(花間蝶舞紛紛雪) 버드나무 위에 꾀꼬리가 나는 것이 조각 조각 금과 같네(柳上鶯飛片片金)’ 봄이면 사랑받는 동요 `고향의 봄`과 `오빠 생각`이 있다. 이 동요에 얽힌 러브스토리가 봄햇살처럼 따스하다. 1925년 한 소녀가 오빠를 생각하며 한 편의 시를 쓴다. 이 시는 훗날 동요로 만들어진 `오빠 생각`이라는 시였다. `오빠 생각`을 쓴 사람은 당시 12세였던 경기도 사는 최순애였다. 최순애에게는 오빠 한 명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계몽운동을 펼치던 항일운동가 최영주였다. 그는 민족운동을 위해 집을 떠났고, 최순애는 그런 오빠를 기다렸다. 최영주는 일본 순사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1945년 타지에서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된다. `오빠 생각`은 최순애가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그리워하며 쓴 시. 이후 최순애는 월간 잡지 `어린이`에 보내게 된다. 민족 운동가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를 위해 만든 잡지 `어린이`에 최순애의 `오빠 생각`이 실리게 된다. `오빠 생각`은 독립투쟁을 위해 집을 나간 청년들을 연상케 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5년 후에 동요로 만들어졌다. 그녀의 시에 반한 소년이 있었다. 이후 최순애는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마산에 살고 있는 16세 소년이 보낸 것이었다. 순애와 통하는 점이 많았던 소년의 편지는 순애에게 큰 위로가 됐다. 그 후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는 무려 10년간이나 이어졌다. 어느덧 성인이 된 두 사람의 마음에는 서로에 대한 연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애네 집에서 혼사를 서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 만나자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 당일 오전 그는 최순애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일본 순사들에게 체포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최순애는 그가 석방될 때까지 그를 기다렸다. 1년 뒤, 드디어 둘은 만나게 된다. 최순애의 시에 반해 편지를 쓰게 된 이원수. 그렇게 시 하나로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졌다. 1926년 식민지 시대 이원수는 자신이 아홉 살 때까지 살았던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의 봄`을 썼다. 공교롭게도 `오빠생각`이 실린 `어린이` 잡지에 1년 늦게 입선작으로 `고향의 봄`이 실렸다. 2003년 경남 창원시는 ‘이원수 문학관’을 건립하였다. 그의 삶과 사랑, 문학적 성취 및 친일 행적도 함께 전시했다. 몇 편의 친일 시가 시인의 생애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단죄의 물증이 아니라, 반성과 교훈의 계기일 수 있음을 보여준 귀한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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