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총선이 끝나니 쌀쌀하던 아침 기온이 다소 온화하여 가까이 있는 흥무공원에 산책을 나가보았다. 벚꽃이 지고 가지마다 연둣빛 새잎이 봄비에 씻겨 깨끗하게 보인다. 맑은 공기와 청정한 수목의 빛깔이 비목(鼻目)을 시원하게 씻어 주는 듯 상쾌하게 느껴졌다.   공원 화단에는 연산홍이 곱게 피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잔디는 어느덧 춘양을 받고 제법 자랐다. 아침 일찍 산책 나온 시민들이 건강증진을 위해 가벼운 체조를 하고 있다.   우뚝하게 서 있는 ‘흥무대왕어록비’가 아침 햇볕을 받고 선명하게 보인다.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아시고(知成功之不易), 성공한 것을 지키는 것 역시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소서(念守成之亦難).” 라는 어록이 새겨진 큰 비문을 간혹 읽어 보았으나 뇌리에 남아 있지 않아서 다시 읽어 보았다.   이 비문은『삼국사기』에 담겨있는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의 대화 내용을 번역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다. 장군이 병으로 누워 수일이 지났으나 회복되지 않았기에 문무대왕이 친히 문병 행차를 하였다. 그때 장군은 “신이 고굉(股肱)의 힘을 다하여 원수(元首)를 받들기가 소원이었는 데 견마의 병이 이르니 금일 후에는 다시 용안을 뵈옵지 못하겠습니다(庾信曰 臣願竭 股肱之力 以奉元首 而犬馬之疾至此 今日之後 不復再見龍顔矣.)” 자신의 중병을 스스로 깨닫고는 유언적(遺言的) 말씀을 하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문무대왕은 “과인에게 경이 있음은 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은 일이다. 만일 피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백성들은 어떻게 하며 사직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寡人之有卿 如魚有水”하니, 유신이 대답하기를 “신이 어리석고 불초하니 어찌 국가에 유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하게도 밝으신 성왕께서 써서 의심치 아니하시고 맡겨서 의심치 않으시기 때문에 대왕의 밝으신 덕에 척촌(尺寸)의 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신이 보면 예로부터 대통을 잇는 임금이 초기를 초기답게 잘하지 않는 이가 없지만 나중을 잘하는 이가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대의 공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없어지니 매우 통탄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공이 쉽지 않음을 아시고 수성 또한 어려움을 생각 하시와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 하시어 위에서 조정이 화목하고 아래서 백성과 만물이 편안하여 화란이 일어나지 않고 기업(基業)이 무궁하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유감이 없겠습니다(伏願殿下知成功之不易 念守成之亦難 疎遠小人 親近君子 使朝廷和於上 民物安於下 禍亂不作 基業無窮 則臣死且無憾)”라는 사적(事蹟)이다.   왕이 장군의 집에 직접 행차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닐 것이며, 김유신 장군이 왕 가까이 있다는 것을 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다는 표현에서 김유신 장군의 나라 위한 공적이 지극히 컸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고, 또한 장군 자신이 수많은 전투에서 이룩한 공적을 지극히 적은 척촌에 비유하면서 그것도 대왕의 밝으신 덕 때문에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하니 군신 간의 도덕적 인품의 높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성공과 수성의 어려움을 알고 깊이 생각하여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하여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통치하라는 염원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다. 22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결의가 준엄하였음이 결과적 교훈으로 느끼게 한다. 과반수를 채우지 못한 여당과 과반수 초과 의석을 확보한 야당이 모두 자당의 이기적 입장만을 내세우며 국정을 운영한다면 국태민안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김유신 장군의 말씀과 같이 성공과 수성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고굉의 힘을 다하여 전투에 승리하여 대공을 세웠지만 그것을 척촌의 공으로 표현한 겸손의 마음과 소인을 멀리하고 군자를 가까이하여 기업(基業)이 무궁하기를 바라는 진언을 울면서 받아들인 문무대왕과의 교훈적 대화는 위정자에게 의미 깊은메시지를 전해 주는 것 같다. 찬란한 조광(朝光)이 오늘따라 우뚝한 어록비를 더욱 밝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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