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편집국장)
태국 방콕에서 남쪽으로 약 2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담넌사두악’이라는 수상시장이 나온다. 운하와 수로가 발달된 태국은 예로부터 수상시장이 발달했고 그 유형적 자원은 지금까지 남아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시장은 고유의 시장 기능을 잃었지만 과거 시장의 원형을 잘 보전해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관광객들은 버스를 대절해서 이 시골 수상시장에 모여든다. 대여섯명이 탈 수 있는 보트를 타고 길게 조성된 수로를 미끄럼질 치다보면 태국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담넌사두악’에서 다시 20분 정도 가면 ‘암파와’ 수상시장이 나온다. 여기도 수상시장이기는 하지만 ‘담넌사두악’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데 비해 ‘암파와’는 내국인이 더 많이 찾는다. 보트를 타는 것이 주된 테마를 가진 관광시장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의 물건들을 내놓고 방콕에서 온 손님들을 끌어 모은다.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지천으로 날아다녀 반딧불이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다시 10분을 더 가면 ‘메끌롱’ 시장이 나온다. 여기는 철로변에 세워진 시장이다. 기차가 다니는 길에 좌판을 펴놓은 재래시장인 이곳은 기차가 달려오면 잽싸게 좌판의 물건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오랜 기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기 때문에 상인도 기관사도 암묵적 약속이 됐다. 이 시장도 최근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다. 시장에 파는 물건은 ‘메끌롱’ 지역의 서민들의 밥상에 올라갈 생선과 육류, 조악한 생필품들이어서 별달리 눈에 띄는 것이 없지만 위험한 철로변에 좌판을 펴고 앉은 태국 상인들의 태연한 모습이 구경거리다. 과거 동네 사람들만 호젓하게 다녔던 이 시장길에 요즘에는 인근 방콕의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바글거린다.
여행하면서 가장 즐거운 볼거리는 역시 사람들의 모습이다. 우리와 사는 방법이 다른 현지인들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야말로 여행 중의 백미다. 태국의 왕궁이나 거대한 사원, 고급스러운 비치를 보고 와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지만 잠시 들렀던 재래시장의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바로 여행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사람냄새를 맡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제법 이골이 난 여행자들은 어느 도시든 도착을 하면 가장 먼저 시장을 달려가서 살아있는 그네들의 모습을 살피고 박물관에 가서 그 도시의 역사를 한 눈에 살핀다. 해가 지고 어스름녘에는 유곽을 더듬으며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오면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즐겨 찾는다. 같은 이치다. 남대문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국 서민들의 땀냄새를 맡고 우리네 살림살이를 엿본다. 싼 가격에 한국 물건을 사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살핀다.
경주에 오는 사람들은 뭘 먼저 보고싶어 할까? 불국사와 석굴암, 천년고도의 문화를 찾는 것은 당연한 코스지만 여기에 덤으로 경주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보여줄 마땅한 자원이 없다. 재래시장은 모두 현대화 됐고 중국에 있는지 일본에 있는지 변별되지 않는다.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자원이 없어 시장으로 관광객을 유인하기에는 애시당초 글렀다.
시장이 활성화 되려면 관광객들이 가세해 줘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다.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하면 외지의 사람들을 불러들일까 단체장들은 고민하고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라는 화두를 두고 그것을 풀기 위한 명상에 돌입했다.
너무나 뻔한 얘기지만 경주만이 가질 수 있는 물목들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고 경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장풍경을 복원하는 것이 차선이고 시장에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부여하는 것이 삼선이다. 시설을 현대화 하려는 상인들의 요구에 급급하다 보면 고유의 매력은 반감되고 아무리 그렇게 노력해도 현대적 대형마트의 시설을 따라잡지 못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다.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매력 있는 것이 시장이다. 자생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다양한 예를 찾고 경주의 현실에 적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시장에서는 그 곳의 사람들이 먹고 입고 즐기는 것들이 정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