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경주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던 날이었다. 그 날 관객은 경주의 주요 문화계인사들이 초대됐고 정관계에서도 적지 않은 인사들도 공연장에 나왔다. 그날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 당시 경주오케스트라를 후원하던 공기관의 장이 일어나 연주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를 소개하는 일을 저질렀다. 전무후무한 해프닝이다. 그 이에 의해 호명 당한 주요 인사는 또 넙죽넙죽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울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국제미술전이 열리는 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앞자리에는 그 날 참가한 외국 작가와 국내 원로작가들의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그러나 시의원, 구의원들은 이름표를 무시한 채 앞다퉈 그 앞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우물쭈물하던 작가들은 뒷좌석으로 밀려났고, 주최 측에서도 내빈소개에서 주요 기관장들 소개만 했지 참가 작가들의 소개를 생략했다. 2002년 3월 동유럽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국립부다페스트박물관. ‘헝가리 건국 1천년 기념 국제 타피스트리전’이 열렸다. 국제적인 타피스트리 작가들이 참석했고 그 행사에 상을 받는 작가들과 하객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 축사나 인사말을 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박물관장과 문화유산부 장관이었다. 당시 헝가리의 대통령이었던 페렌츠 마들도 참가했지만 대통령은 수상자들과 나란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행사 내내 조용하게 박수치고 두 사람의 관련 기관장의 인사말을 경청했다. 행사가 끝나고도 전시장을 꼼꼼하게 둘러보고는 조용하게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현재 우리의 각종 행사장은 어떤가. 서로 앞자리에 앉으려고 다툼을 하고 행여 축사에서 빠지면 섭섭해 하기 일쑤다. 정작 그 행사의 주인공들은 자리다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뒷자리로 밀려나고 섭섭해 하기도 전에 행사는 막을 내린다. 얼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류가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안전행정부가 정한 의전편람은 있다. 거기에는 주요 기관장의 의전 예우는 어떠해야 하며 각종 행사에서 어느 손님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사례 위주로 자세히 적고 있다. 그러나 각 기관단체에서는 편람은 다만 예시일 뿐 정해진 룰이 없다고 말한다. 참석 내빈에 따라 의전의 방법은 조금씩 바뀌며 행사의 성격에 따라 주인공을 우선적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지역의 대다수 행사에 이 같은 상식이 통하고 있는가? 축제행사에 지역의 문화계 수장은 뒷자리에 앉았고, 어느 누구도 자리 안내를 해주지 않으며 세레머니가 끝나고도 안내를 해 주는 사람이 없다.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의 눈에는 한 분야의 대표자도 없고 그 분야의 원로도 없다. 특히 예술행사일 경우에는 더 가관이다. 예술가들은 그 흔한 꽃 하나 가슴에 달지 못하고 우울하게 들러리 선 채 배회하다가 퇴장한다. 이런 현실이 되기까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얼굴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투듯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야 여러모로 자신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찍히고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것을 가감 없이 보도하는 언론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다른 하나는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의 ‘윗사람 눈치 보기’다. 누가 만든 서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암묵적인 순서가 존재한다. 자신이 모시는 윗사람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예우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행사가 시작될 무렵 자신들의 리스트에 올라온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기린목이 되도록 두리번거린다. 자신이 나서야 할 자리와 양보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차리는 염치가 필요한 세상이다. 설령 자신의 자리라 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먼저 내주던 것이 우리네의 미덕이었다. 마치 시장의 떨이물건을 먼저 사려고 다투는 아낙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이 행사장의 현실이다. 원로가 윗자리에 앉고 주인공이 앞자리에 앉고 관련자가 우대되고 모든 행사의 절차가 그들을 위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품격이다. 이상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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