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편집국장) 옛 소련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만에 지구 상공을 일주해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당시 소련 공산당 총리였던 흐루시초프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가가린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우주에 나가보니 과연 신이 존재했는가?” 가가린은 “예, 신이 존재하던데요.”라고 대답했다. 흐루시초프는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신의 존재가 알려지면 공산주의가 무너지니까 밖에 나가서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마라.” 그 뒤 가가린은 교황의 초청을 받아 교황청을 방문했다. 교황 요한 23세도 가가린에게 물었다. “과연 신지 존재하던가?” 가가린은 흐루시초프의 당부가 떠올라 대답했다. “신은 없었습니다.” 교황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밖에 나가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말게.” 모든 통치자는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끌어간다. 조작하고 호도하고 왜곡한다. 그래서 역사는 통치자에 의해 기록된다. 그것은 권력의 힘으로 가능할 수도 있고 금전의 힘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그 같은 통치자의 전횡은 당대에는 영원히 자신의 의도대로 이뤄지고 진실이 묻힐 것으로 여기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반드시 밝혀진다. 권력의 힘이 되고 금전의 약발이 떨어지면 숨어 있던 진실이 고개를 든다. 만고의 진리다. 우리는 지난 정권들의 치부가 하나 둘 드러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집권 당시 목을 움츠리고 쉬쉬했던 언론들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당시의 맹목이 갑작스럽게 다시 밝아졌을 리 없다. 알지만 덮었던 여론 생산 주체들의 잘못이 크다. 그 보다 더 우스운 사실은 그 정권 당시 앞장서서 두둔하고 옹호했던 인사들이 지금은 가장 큰 목소리로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가치관이나 역사의식이 시대적 조류에 따라 팔랑거린다면 그 인물의 정체성 또한 부박하다.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한 일들을 수시로 맞닥뜨린다. 요즘이야 워낙 매체가 다양하고 신속해져서 비밀이 크게 많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정확한 정보인지 가려내기 힘들다는 새로운 숙제가 가로막혔다. 접근 방식에 따라 사안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도 문제다. 대명천지에 비자금을 조성해서 수천 개의 차명계좌로 나누는 일이 벌어지는 일이야 없겠지만, 도의적인 문제나 판단의 적정성 등은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역사적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진리라는 것은 존재한다. 물론 절대 진리는 없겠지만 보편적 가치의 진리는 있다. 여기에 맞춘 통치철학이 존중받는다. 거기에는 진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설령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통치자가 진정성을 가지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성사되는 경우가 있다. 국정원 댓글조작이라는 현안에 몰린 정부는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세금 문제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야당은 이 두 가지 사안을 들고 장외 투쟁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국민들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가 진리인지 가려내기 힘들다. 시간이 흐른 뒤 역사적 진실이 가려지겠지만 그 때는 이미 막차가 떠난 뒤다. 모든 역사는 이렇게 방황한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발전해 나가지만 최악의 경우 엄청난 후퇴를 감수해야 한다. 국민들은 늘 눈을 뜨고 있지만 그 눈을 가리는 묘한 필터가 산재해 있다. 강직하고 공정한 판단을 해 주던 원로들도 사라졌다. 이제는 개개인의 혜안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모든 통치자는 자신이 유리한대로 여론을 조작하고 호도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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