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편집국장)
  뉴욕의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가릴 정도의 마천루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바쁘게 오가는 뉴요커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촌각을 다투듯 바쁘게 돌아가는 월스트리트. 도무지 여유와 정감이 없을 듯한 도시다. 그러나 이곳에 뉴욕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공원이 있다. 하이라인 파크다.  1800년대 초반 발전을 거듭하는 뉴욕의 공장지대였던 맨해튼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물류였다. 넘쳐나는 화물을 마차로 실어 나르는 데 한계가 왔다. 그래서 1847년 도시 한복판에 철도를 건설했다. 그러나 도로 한가운데 건설된 철도에서 인명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달리는 화물차 앞에 카우보이를 고용해서 교통정리를 했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고가철도로 바꿨다. 그것이 1930년이다.  맨해튼의 도시구조가 공업지구에서 상업지구로 바뀌고 운송수단도 화물차로 개편되면서 고가철도는 또다시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1980년을 마지막으로 운행이 중단된 철도는 도심 속의 흉물로 방치됐다. 쥴리아니 당시 뉴욕시장은 철도를 철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10여년 방치됐던 철도변에 이름 모를 야생화와 낙은 수목들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고 이미 작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1999년 비영리 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이 결성되고 철도를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2003년 이 단체는 ‘하이라인을 디자인하라’를 주제로 국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그곳이 미국의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데 공헌했던 주요 수단이었던 철도였음을 기억하도록 역사를 담고 미래를 함께 제시할 수 있는 디자인을 기대했다. 7개월의 공모기간 중 36개국에서 720여 개 팀이 지원했다.  하이라인은 이렇게 변모했다. 고가철도 시절을 모티프로 각종 장식물들이 거칠게 배치돼 과거 뉴욕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최첨단 시설물들이 들어서 뉴욕의 미래를 엿보게 했으며 야생화와 나무들이 시민들과 함께 자라게 됐다. 뉴욕의 역사를 통시적이며 함축적으로 보여주게 된 것이다. 공원만 만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공원을 찾고 모일 수 있도록 각종 이벤트를 운영했다. 거기에는 교육, 예술, 음식, 공연, 투어, 강연 등 다양하다. 매년 450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니 부럽기만 하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것을 바로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라는 민간단체에서 만들고 끌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시는 공원 조성 초창기 작은 지원금만 내놨을 뿐 그 이후에는 모두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부금을 내놨고 그 돈으로 이 공원은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도시 전체가 공원이다. 돌아보면 나지막한 산이 있고 더 이상의 설치미술은 없을 것 같은 왕릉이 있다. 고대 왕국의 왕경도시답게 유적은 널려있고 설화는 발에 밟힌다. 외지의 관광객들은 이만한 경쟁력을 가진 도시를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자전거를 타고도 모두 돌아볼 수 있도록 관광 콘텐츠는 비교적 근접해 있고 도시 분위기도 번잡하지 않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신라의 유적들은 그 미학적 가치마저 뛰어나 지루하지 않게 둘러볼 수 있다. 조건은 완벽하다.  그러나 이런 장점을 극대화시킬 시민운동이 없다. 보석은 가졌지만 닦고 빛을 내서 드러내놓지 못하고 있는 격이다. 관에서 하는 정책은 매우 경직돼 있다. 민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며 잘만 모은다면 가장 경주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아이템이 생산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선다면 불꽃처럼 일어나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구심점이 될 사람이나 그를 따를 시민들이 없고 그런 열정이 없는 듯하다.  서구인의 시각에 비친 경주의 외형은 전형적인 동양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경주의 문화는 낯설기 때문에 오묘하다고 한다. 이를 집약하고 떨쳐나갈 시민운동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시민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경주의 미래를 살찌울 길이다.  산업체 유치나 다른 경제활동에 거는 기대는 한계가 있다. 다른 도시들도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이다. 경주의 역사·문화·관광콘텐츠는 다른 도시의 도전이 불가능하다. 손에 쥔 떡을 썩혀서는 안 된다. 늦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지금이 가장 이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