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편집국장)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파빌리온은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엑스포의 독일관으로 설계됐다. 근대건축의 한 거장으로 손꼽히는 미이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이 파빌리온은 엑스포가 끝난 1930년 철거됐다가 나중에 그 건축물의 건축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1986년 복원됐다.  파빌리온은 전체적으로 장식을 배제하고 물, 유리, 대리석 등을 사용해 재료의 특성으로 그 장소를 수식했다. 그리고 설계자의 치밀한 계산을 통해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단순하고 밋밋하지만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설계자 미이스는 자신의 설명으로 이 건축물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은 단 두 문장으로 압축된다. ‘Less is more’, ‘God is in the details’.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고 디테일 속에 신이 있다는 말이다. 장식성을 최대한 억제한 기하학적 요소로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섬세한 디테일로 그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2010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엑스포의 한국관. 상하이엑스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가관으로 손꼽혔다. 관람객이 수백 미터씩 줄을 섰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입장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던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관의 건축미가 매우 빼어났고, 예술적 가치가 높았다는 평가가 있다.  한국관을 설계한 사람은 미국에서 한참 잘 나가는 젊은 건축가 조민석씨다. 그런데 조민석씨는 한국관을 설계하면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기하학적으로 엮어 구성했다. 콘셉트는 ‘소통’이었다. 모든 문자와 기호는 서로간의 의사를 전달하는 소통의 수단이라는 상징을 표현했고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고자 하는 시도였다. 여기에 백남준 이후에 가장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진 강익중씨가 알록달록한 타일로 한글을 새겨 놓았다. 최고의 건축가와 작가의 만남이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한국관은 참가한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했고 국격도 높였다. 한국관 관람객은 모두 725만명으로 당초 목표 600만명보다 20%를 초과 달성했다. 이 같은 방문객 수는 2009년 한 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 방문객 134명의 5.4배에 해당한다. KOTRA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관 운영을 통해 약 7조원(수출 증대효과 6조3천600억원, 관광 증대효과 6천3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건축은 예술인 동시에 경제적 파급효과도 크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여줬다.  경상북도 경주시 예술의 전당. 지난달 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각가 정욱장씨가 경주를 방문했다. 경주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예술의 전당으로 오라고 안내했고, 거기서 손님을 맞이했다. 그는 나를 만나서 첫 마디로 “이게 도대체 무슨 생뚱맞은 건물입니까?”라고 물었다. 경주의 정체성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채 무지막지하게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 건물이 아니라 예술을 담는 그릇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가슴 속에 몰래 감춰뒀던 부끄러움 한 자락을 눈 밝은 예술가에게 들키고 말았다. 산속도 아니고, 도심에 파묻힌 것도 아닌 밋밋한 건물이 허허로운 벌판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천년고도 경주의 예술의 본산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설령 경주에 대해 숙고하지 못한 이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더라도 경주시의 공무원과 당시 시장은 무슨 안목으로 그것을 결정했을까. 앞부분의 모양은 에밀레종을 형상했고 지붕은 경주의 다양한 고분들을 패러디했다고 얘기했을 때 ‘옳거니’하고 무릎을 친 것은 아닐까.  프랑스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을 무지 싫어했다. 모파상은 친구와 식사를 할 때 반드시 에펠탑 안의 식당을 이용했다. 파리 시가지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은 바로 그곳뿐이었다. 인도의 간디는 성애상이 빼곡하게 조각된 카주라호의 힌두사원군을 두고 ‘모두 부서버리고 싶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둘은 모두 프랑스와 인도의 대표적 관광명소가 됐다. 경주 예술의 전당도 훗날 과연 그런 이변을 가지고 올까. 모르긴 해도 그런 일은 없을 듯하다.  문제는 그런 건축물을 덜컥 짓게 내버려 둔 당국의 심미안이다. 어쩌란 말인가. 수백억원을 들여 지은 건물을 보기 싫다고 해서 당장 무너뜨릴 수도 없는 일이다. 당초 철저하게 걸러낼 수 있어야 했다.  앞으로 경주에도 수많은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다. 다시는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면 안 된다. 두고두고 애물단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경주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