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편집국장) 지난 금요일 오전. 대검찰청의 젊은 검사 한 사람이 검찰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리고 사의를 표명했다. 김윤상 대검 감찰1과장이다. 그는 채동욱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난 뒤 이 글을 작성하고 사표를 제출했다.그 글에는 그가 쓴 표현 중의 하나인 ‘선혈낭자’한 구절이 종횡무진 등장했고 이 시대의 젊은 법조인의 고민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머뭇거리거나 에두른 표현이 없었고 직설적이고 용맹스러웠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적 갈등이 권력 핵심부에서 종양처럼 곪았고, 정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몸부림치던 검찰의 아픔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그리고 문득 공안정국으로 변해버린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이 암울하기 짝이 없어 우울했다.김 과장이 남긴 ‘내가 사직하려는 이류’라는 글의 일부를 보자. 그는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경솔한 결정을 하려 한다고 전제한 뒤 “신중과 진중을 강조해 온 선배들이 화려한 수사 속에 사실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기억이 많아 경솔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고 밝혔다.또 채 총장의 사직에 결정적 역할을 한 법무부장관과 이 번 채 총장 감찰을 부추겼다고 추정하는 무리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고 썼다. 그러면서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게 낫다”고 덧붙였다.거기에 그의 역사관도 한 구절 등장했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딸로 대변되는 미래세대에게 당당한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 모두 각성하자는 호소로 비춰졌다. 그의 표현은 이 시대의 아버지가 겪는 고민이 잔뜩 묻어있다.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왔으니까 이쁘게 봐주’라고 해야 인간적으로 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는 고백이다. 단순하게 한 가정의 아버지가 겪는 이야기로 표현됐지만 이 시대의 모든 기성세대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그리고 그는 권력을 향해 삿대질도 했다.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속에 짓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또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다시 환기시켰다.물론 김 과장의 이 격문을 두고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공무원이 자신의 길을 제대로 걸어가면 되지 개인적 소견을 공개적으로 펴 부하뇌동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고, 자신의 자리에서 객관적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할 공무원이 총장의 참모라는 명분으로 한쪽의 편을 지나치게 들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그러나, 어떤 이유였든 청와대는 15일 채총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혼외 아들’에 대한 진실규명이 우선이라는 명분을 들었다. 파다하게 퍼진 청와대 개입설을 차단하고 16일 마련된 3자회담에 민주당의 주도권을 주지 않으려는 절묘한 한 수였다. 진실이 무엇이든 한 젊은 검사가 용기 있게 던진 저 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모든 국민은 숙제를 떠안게 됐다. 채총장이 과연 결백한가를 떠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번지게 된 권력과, 무지막지한 언론, 그 와중에 잽싸게 숨어든 국정원, 머리가 복잡한 국민 모두가 이 글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과연 이 상황이 정상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만한 환경인가. 어떤 고통과 위기가 닥치더라도 절대가치를 지키기 위해 순교할 아름다운 정치인이나 지식인이 이 나라에 얼마나 존재할까. 부정적이고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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