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편집국장)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한다. 출장차 갔던 파리의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S호텔은 오래된 전통과 클래식한 분위기로 투숙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핀다. 그러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투숙객이 결정하며 스태프들은 그 결정에 따른다. 복도에서 직원과 마주치면 밝은 미소를 띄며 가벼운 목례를 올린다. 그리고 투숙객이 스쳐갈 동안 자신의 일을 잠시 멈추고 길을 비킨다. 투숙객이 필요에 따라 직원을 호출하면 다가와서 “저는 K라고 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묻는다.M호텔은 비교적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여러모로 쾌적한 시설을 자랑한다. 객실에서부터 부대시설에 이르기까지 호텔이 투숙객을 위해 던지는 배려는 가히 일품이다. 스태프들은 나를 발견할 때마다 “미스터 리 기분은 어떠세요?”라든가 “미스터 리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라고 묻는다. 아침을 먹고 객실에 돌아와 쉬고 있으면 전화벨이 울려 “미스터 리 몇 시에 체크아웃 하시겠습니까? 도와드릴 것은 없나요”라고 확인한다. 치밀하고 체계적이다.여러분은 어느 호텔이 더 나은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S호텔의 경우 지나치게 무성의하게 손님을 방치한다는 느낌이 든다. 손님이야 무엇을 하든 내버려 두고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초보 여행자라면 매우 불편하고 당황스럽다. 반면 M호텔은 친절의 극치를 달린다. 투숙객의 모든 것을 꿰뚫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다 베풀려 한다.그러나 나는 M호텔이 불편했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을 정도로 나의 성을 또렷하게 기억해 마주치는 스태프들이 호명하는 것도 어색했다. 객실 안에서의 개인적 자유에 수시로 끼어드는 과잉친절에 짜증이 났다. 여행의 첫째 욕구는 자유다. 그 자유를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여행의 즐거움 중 절반이 줄어든다.관광산업에 타깃을 설정한 마케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설명하려 한다. 물론 영화나 출판에서는 목표 독자나 관객을 미리 정한다. 그것을 Target Audience라고 한다. 그것은 수용한계를 미리 설정해 두고 집중적 마케팅을 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 시키려는 의도다.그러나 관광은 수용자의 한계를 미리 정하면 안 된다. 예컨대 중국인의 관광 자율화를 앞두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을 집중 개발하는 행위가 그 범주에 속한다. 중국인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면 나머지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린다. 동남아시아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나자 다른 국가의 관광객들이 방문을 자제하는 경우가 예다. 시끄럽고 무질서하며 예의가 없는 중국인들과 어울려 관광하기 싫다는 이유다.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우리 방식대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경주의 경우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경주의 멋을 지켜나가고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이번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전통문화와 고유문화가 얼마나 경쟁력이 강한가를 입증한 것을 되새겨야 한다.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꾸준하게 지켜나가면 된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를 유심히 살피고 어느 누가 와도 불편하지 않게 조용한 배려를 하면 된다. 그것이 최상의 마케팅이다.경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모두 경주가 가진 주체적 매력에 흠뻑 빠진다. 만약 경주가 제주도나 서울처럼 국제 표준화된 인프라를 갖췄다면 경주만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직 손때가 덜 묻었다는 것이다. 일부 관광단지를 제외한 경주 구시가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자산이다. 여기에 손을 대면 개성이 반감되고 매력이 떨어진다.경주가 가진 훌륭한 문화자산이었던 쪽샘지구가 사라진 것은 관광행정의 큰 실수다. 고대문화 자산만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시대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탓이다. 경주의 본래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것을 밀어버리고 유적공원을 만든다면 과연 중국의 시안이나 터키의 이스탄불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아직 경주는 많이 남았다. 황남지구나, 사정지구는 손금처럼 뻗은 골목길이 존재하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이 매우 흥미롭다. 물론 개발이 제한된 지역에 살아가는 시민들의 고충이 존재한다. 동전의 양면은 항상 붙어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적 판단으로 지나친 개발을 서두른다면 경주를 찾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어색하게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경주의 멋에 매료될 수 있도록 차분하고 치밀하게 우리의 것을 다듬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