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당 성타 대종사께서 생사의 관문을 벗어나 열반적정에 드시며 토함산이 깊은 적막 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비통함에 잠겼습니다”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인 나가당 성타 대종사 영결식 및 다비식이 19일 오전 10시 불국사 무설전에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과 다비식이 엄수된 불국사에는 전국에서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계종 종정 예하 성파 대종사, 원로회의 의장 자광 대종사, 총무원장 진우스님, 중앙종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영단에 향과 게송을 올리고 대종사의 행장을 되짚으며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영결식을 찾은 전국 2000여 명 사부대중은 무애평등을 전한 스님의 자애로웠던 삶과 가르침을 추모하며 마지막 길까지 배웅했다.영결식은 명종을 시작으로 개식, 삼귀의례, 영결법요(운성스님, 성상스님), 헌향(불국사 관장 종상 대종사), 왕생축원(법주사 조실 지명 대종사), 행장소개(운암스님), 영결사(원로회의 의장 자광 대종사), 법어(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 추도사(총무원장 진우스님), 조시(불국사승가대학원장 덕민 대종사), 조사(중앙종회의장 주경스님 외), 사홍서원, 발인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에 이어 영정과 만장을 앞세운 행렬은 불국사에서 정혜료를 지나 다비장으로 향했다. 다비식에 참석한 사부대중은 성타 대종사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한편, 평생 포교와 중생제도의 외길을 걸어온 나가당 성타 대종사는 15일 오전 11시 20분 불국사에서 세납 83세, 법랍 72세로 입적했다. 1952년 불국사에서 월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성타 대종사는 1974년 불국사 소임을 맡아 당시 어려웠던 불국사를 지극한 정성과 절약정신, 솔선수범으로 불국사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스님은 1982년 조계종 교무부장을 맡아 단일계단 시행의 기반을 다졌고, 비구와 비구니로 나눠 공부하던 중앙승가대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꿔 정규대학에 편입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또 조계종 6~11대 중앙종회의원을 거치며 다진 종무행정의 경험을 토대로 종단의 주요 종무직을 수행했다. 특히 1995년 조계종 포교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포교와 전법행정의 기틀을 마련해 포교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스님은 1998년과 2006년, 2010년에 각각 3차례 불국사 주지를 연임했으며 종단의 호계원장을 맡아 지계청정과 수행가풍, 종법질서를 올곧게 수호하는데 최선을 다했다.특히 스님은 사회의 아픔을 보듬는 사회운동과 남북통일, 환경운동에 진력했다. 경주 생명의 숲 등 환경 NGO의 이사장과 공동대표를 역임하면서 종단은 물론 지역 환경운동을 선도, 견인했다.또 경주 경실련 창립을 주도해 경제정의구현과 경주 방폐장 유치문제의 갈등과 잡음을 해결해 이 같은 공적으로 2002년 12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스님은 원적에 앞서 “여시래(如是來, 이와 같이 왔다가), 여시거(如是去, 이와 같이 가는데), 차생사(此生死, 이러한 생과 사는), 불가언(不可言, 말로 해서 무엇하리)”이라는 열반게송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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