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가 일상화 됐다. 그럼에도 비만 인이 여전히 늘고 있는 추세다. 어느덧 비만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언젠가 일부에선 비만을 유발 시키는 음식을 제조하는 기업에 대해선 ‘비만 유발 세’를 부여하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더구나 비만은 미를 해친다는 생각이 지배적 이어서인가 보다. 요즘 남녀노소 살빼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세태 탓인지 왠지 19세기 말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 그림 속 여인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특히 르누아르가 그린 어느 그림 속 여인은 결코 바비 인형 같지 않다. 긴 머리를 한 쪽으로 길게 땋아 내리고 있는 쉬잔 발라동 이다. 민소매 옷 속 굵은 팔뚝, 풍만한 젖무덤을 지닌 쉬잔 발라동 자태다. 실제로 쉬잔 발라동 몸매가 결코 날씬 하지 않았음을 이 그림은 무언으로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다. 이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통통한 몸매인 필자로선 적으나마 위안을 얻곤 한다. 이 그림을 대하노라니 19세기 말 혼돈 속에서 프랑스 몽마르트 예술가들 연인이었던 쉬잔 발라동 생애에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어떤 여인이었기에 르누아르, 로트레크 등이 그녀를 모델로 그토록 많은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증이 인다. 마침 김정미가 지은 ‘역사를 움직인 33인의 리더’라는 부재의 『세계사 여자를 만나다』를 읽었다. 이 책을 대한 후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여걸들의 남다른 능력과 미모로 역사를 뒤흔든 그들의 발자취를 한 눈에 엿볼 수 있어서 매우 유익했다. 특히 책 속에 수록된 33인의 여인들에 대한 내용 중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쉬잔 발라동이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당대 유명한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림 속 쉬잔 발라동은 시대 탓도 있겠지만 요즘 여인들처럼 다이어트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매우 풍만한 몸매다. 또한 약간 사팔뜨기 눈을 지닌 순박한 외모다. 그녀가 어떤 매력을 발산 시켰기에 그 시절 유명한 르누아르. 로트레크, 드가 등 많은 화가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었을까 싶다. 현대 음악 창시자 에릭 사티와 6개월 간 동거 생활을 청산 할 때 쉬잔 발라동은 미련 없이 그를 떠났다. 에릭 사티는 평생 그녀와의 지난 사랑을 간직할 정도로 일념으로 그녀를 못 잊어 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쉬잔 발라동은 프랑스 중부 리무쟁 지방에서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직업 전선을 전전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다시 부모의 직업인 세탁부 일을 물려받기 위하여 집으로 되돌아와 어머니 일을 돕던 중 우연히 화가 퓌비 드샤반을 알게 되어 몽마르뜨 직업 모델로 나서게 되었다. 그녀는 화가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고 때론 그들과 사랑을 나누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이후 쉬잔 발라동은 모델로서 만족 하지 않고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도 화가로서 길을 걸었다는 점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는 화가가 된 후, 인간을 그리기 시작하여 더욱 그렇다. 그녀가 그린 그림은 그 당시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여인의 누드화였다. 남성 화가들이 지닌 여성 육체에 대한 탐미적 관점이 아닌, 여성이 바라본 시각으로써 여성 몸속에 녹아있는 진정한 삶에 붓끝 초점을 맞췄다. 1923년 쉬잔 발라동이 그린 < 푸른 방> 라는 그림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그림 속 여인들은 뚱뚱한 외모와 예쁘지 않은 자태가 대부분이다. 여성을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았지만 가공하지 않은 진정성을 그림 속에 표출한 그녀가 무척 돋보인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성취욕에 앞서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일 아니던가. 불우한 지난 시절, 숱한 남성 편력 그늘에서 벗어난 쉬잔 발라동이 자신의 갈 길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은 꿈에 대한 집요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장 33절).”라는 성경 구절을 삶의 철칙으로 삼아온 여인이 아니었나 싶어서 쉬잔 발라동에 관한 내용을 여러 차례 정독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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